연재/웹소설

📖 전생록 – 제1편 (제1~5장)

행운보화 2025. 10. 3. 04:01

전생록서막

제1장. 다시 눈을 뜨다

세상은 언제나 냉혹했다.
강호에서든, 속세에서든, 살아남으려면 발버둥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발버둥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이 있다.

사내는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싸늘한 피가 발목을 적셨고, 검은 그림자가 코앞에 드리워졌다.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결국 남은 건 패배와 후회뿐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끝나는가.”

숨은 가빠왔고, 시선은 흐려졌다.
동료들은 등을 돌렸고, 믿었던 이는 칼을 겨눴다. 사랑도, 의리도, 노력도, 결국 아무것도 그를 지켜주지 않았다. 세상은 끝내 잔혹했고, 삶은 너무 짧았다.

그 순간, 하늘은 검게 뒤틀리며 낯선 빛이 번졌다.
의식이 끊어지려는 찰나,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이질적인 떨림을 느꼈다. 무너져가던 정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작은 불씨 하나가 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리고 어둠.

눈을 떴다.
숨결이 낯설었다. 천장이 너무 낮고, 손끝은 작았다. 떨리는 손바닥을 보자, 오래 잊었던 매끄러운 피부가 보였다. 아이의 손이었다.

놀람과 혼란이 뒤섞였다. 분명 마지막 순간은 피투성이 전장에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린 시절의 방에 누워 있었다.

‘이건… 꿈인가? 아니면—’

머릿속에 스쳐간 것은 과거의 기억이었다. 수많은 배신, 고통, 피의 장면, 무수한 원한들… 그리고 스스로 망쳐버린 선택들. 그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고, 선명하게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처음의 시간.
그는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회귀… 한 건가?”

심장이 요동쳤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 것일까.
가슴 밑바닥에서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열기가 솟구쳤다.

“이번에는… 달라질 것이다.”

소년의 두 눈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빛을 띠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의 삶은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제2장. 낯익은 얼굴

아침 공기는 서늘하고 고요했다.
작은 마을 골목길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적막했고, 새벽빛이 지붕 위를 스치며 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먼지가 이는 흙길 너머에서, 해맑은 웃음을 띤 소년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야! 일찍 일어났네? 오늘 같이 놀자!”

낯익은 얼굴이었다.
아직 어린 소년의 순수한 미소, 하지만 주인공의 심장은 얼어붙듯 떨렸다.

그 얼굴은… 전생에서 그를 가장 깊이 배신했던 자와 똑같았다.
마지막 순간, 날카로운 칼끝을 가슴에 박아 넣던 그 눈빛이 겹쳐 떠올랐다.

잠시, 숨이 막혔다.
머릿속을 스치는 전생의 파편들—
붉은 피, 차가운 눈빛, 쓰러져 가던 자신의 몸.

‘설마, 이 아이가 그와 같은 운명을 걷게 되는가?’

소년은 그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손을 내밀어 오는 모습이, 오히려 더 잔혹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은 순간적으로 주먹을 움켜쥐었으나, 곧 천천히 풀어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번에는… 달라지겠지. 달라져야만 한다.”

그는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소년의 손과 손이 맞닿는 순간, 아침 햇살이 골목을 비추었다.

그러나 그 따스한 빛 속에서도, 주인공의 눈빛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눈 속에는—
과거의 그림자와, 새로운 결심이 동시에 불타고 있었다.


제3장. 산속의 기인

마을 뒷산은 언제나 안개가 짙었다.
나무는 검푸르게 얽혀 있었고, 돌길은 아무도 닦지 않은 채 잡초가 무성했다. 아이들이 감히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산속 어딘가에 괴이한 노인이 살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일부러 그 산길을 올랐다.
전생의 기억 속, 자신의 운명이 이 산에서 크게 뒤틀렸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다르게 선택하리라.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자, 섬뜩한 기척이 등 뒤에서 스쳤다.
천천히 돌아보니, 초라한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돌 위에 앉아 있었다.

등은 굽었고, 머리는 희끗희끗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칼날처럼 예리했다.

“흠… 이번엔 꽤 일찍 왔구나.”

주인공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번엔”이라니. 마치 전생의 사정을 다 아는 듯한 말투였다.

“어… 어르신은 누구십니까?”

노인은 낡은 대나무 지팡이를 톡톡 두드리며 피식 웃었다.

“내가 누군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네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을 수 있는지다.”

순간, 주인공의 머릿속에 전생의 파편이 스쳤다.
집착으로 얼룩져 결국 파멸로 치달았던 지난 삶.
칼끝에 쓰러져가며, 끝내 놓지 못했던 분노와 원한.

노인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억지로 움켜쥐면 결국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흘려보내면 강물이 되어 돌아오지.
자, 네가 택할 길은 어느 쪽이냐?”

말을 끝낸 노인은 그대로 돌 위에서 사라져버렸다.
안개만이 남아 출렁거렸다.

주인공은 숨을 몰아쉬며 땅에 주저앉았다.
가슴 깊숙이, 설명할 수 없는 떨림이 밀려왔다.

“저 노인은… 대체 누구지?”

하지만 어쩐지, 지금 만난 그 순간이 앞으로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제4장. 전생의 꿈

그날 밤, 주인공은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검은 그림자들이 피비린내와 함께 몰려왔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칼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붉게 물든 전장, 쓰러져가는 동료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가슴을 찌르던 배신자의 눈빛.

그는 꿈속에서 몸부림쳤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과거는 바뀌지 않았다.

그때, 낮에 만났던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거는 강물처럼 흘러갔지.
너는 그것을 쥘 것이냐, 아니면 흘려보낼 것이냐?”

주인공은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식은땀이 흘렀다. 꿈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감각은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제5장. 첫 번째 선택

며칠 뒤, 마을 어귀에서 어린아이 하나가 넘어져 울고 있었다.
주인공은 무심히 지나치려다, 문득 전생의 한 장면이 겹쳐졌다.

과거의 그는, 이런 사소한 장면을 무시했다.
작은 무관심이 쌓여, 결국 자신을 괴물로 만들었다.

주인공은 망설임 끝에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눈물에 젖은 얼굴이 웃음으로 바뀌는 그 순간,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흔들렸다.

“작은 선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 작은 차이가, 이번 생의 길을 바꾸리라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