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웹소설

📖 전생록 5편 — 흐름을 삼키는 심법

행운보화 2025. 10. 3. 22:00

해가 기울 무렵,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간 뒤, 마을 뒷산은 고요에 잠겼다.
바위 위에 홀로 앉은 이강현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작은 어깨였지만, 숨결은 또래와 달리 일정하고 깊었다.

‘전생의 나는 수많은 심법을 익혔다. 그러나 어느 것도 완전하지 않았다. 억지로 기운을 끌어올리다 내맥을 상했고, 조급히 길을 좇다 본질을 놓쳤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아직 어린 몸, 굳지 않은 근맥. 잘못된 습관이 스며들지 않은 맑은 그릇이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가장 좋은 시작이다.’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바람이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듯했고, 내쉴 때는 숲의 적막이 한층 짙어졌다.
어린아이의 호흡이라기엔 지나치게 고요했고, 그 주위의 공기마저 조용히 울림을 띠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다가왔다.
나무 지팡이를 짚은 무영노인이었다.
그는 아이의 곁에 멈춰 서서 잠시 눈을 지켜보다가 낮게 웃었다.

“허허, 숨을 삼키는 법을 아는구나. 보통은 힘으로 끌어당기려 하다 맥을 상하게 마련인데, 넌 바람처럼 흘려 들이는구나.”

이강현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짧게 말했다.
“…그냥 바람이랑 같이 쉬고 싶었어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법이란 억지로 붙드는 게 아니다. 흐름을 따라 마시는 것, 그것이 오래 간다.”


숨결이 이어질수록, 그의 가슴 속에서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처음에는 가늘고 희미했으나, 이내 실 같은 기운이 맥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곧, 숲이 반응했다.

주변 풀잎이 바람도 없이 흔들렸고, 나무 위에 앉아 있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고요한 숲이 잠시 파문처럼 일렁였다.

그러나 이강현은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게 이어갔다.
‘흐름은 연결되어 있다. 내 숨이 잔잔하면 숲도 잔잔해지고, 내 숨이 깊어지면 세상도 흔들린다.
이 단순한 진리를 지난 생엔 외면했다. 이번 생은 다르다. 나는 흐름 위에서 다시 시작한다.’


무영노인은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이의 몸에 이런 맥이 열릴 줄이야… 허허, 남들은 평생을 걸어도 찾지 못하는 길을 벌써 걷고 있구나. 하지만 그게 네 복이자 짐일 터.”

이강현은 눈을 뜨고 짧게 대답했다.
“…그냥 숨 쉬었을 뿐인데.”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숨만 쉬었는데 세상이 함께 쉬었지 않느냐. 그것이 심법이다.”


그날 밤, 별빛이 숲을 덮었다.
이강현은 바위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눈을 감았다.
‘심법은 억지로 얻는 게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던 길을 찾는 것. 그 길 위에서라면 이번 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다시 쓰러진다 해도, 나는 또 일어날 것이다.’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작은 몸 속에서, 세상을 뒤흔들 싹이 조용히 움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