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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록 — 제6편 흐름 속의 작은 변화

행운보화 2025. 10. 4. 07:06

전생록제6편

새벽의 안개가 마을을 감싸 안았다.
이강현은 뒷산 바위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호흡은 더 깊고 고요해졌고, 이전보다 몸도 마음도 덜 떨렸다.
별빛이 사라지고, 새벽빛이 천천히 땅을 비추기 시작했다.

‘어제의 숨결이, 오늘의 선택으로 이어지겠지.’
그는 천천히 일어나 마을 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장터로 향하는 길목, 이른 아침부터 상인들의 목청이 골목을 울리고 있었다.
작은 주막 앞에서 술잔을 닦고 있는 노인은 중얼거렸다.
“시끄러운 녀석들, 이 동네 분위기 다 흐트러지게…”

주민 몇몇은 불평 섞인 눈길로 모여 있었다.

강현이 지나가려는 찰나, 어떤 아이가 균형을 잃고 짐을 흘렸다.
바구니 속 곡식이 땅바닥에 떨어져 흩어졌고, 어른 한 명이 크게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냐! 너같이 어설픈 놈이 뭘 해—”

말끝이 상인들의 시선에 덮여졌다.
아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주변 사람들이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강현은 멈칫했다.
그러나 몸은 움직였다.

조용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그는 무릎을 꿇고 흐트러진 곡식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놀라서 멈췄다.
그의 손놀림은 느렸지만, 정성스러웠다.

비틀거리던 아이는 상인 쪽을 쳐다보며 눈을 흘겼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어른은 말없이 눈을 깜빡이고, 비웃던 사람들도 목소리를 낮췄다.

그때 윤호성이 달려왔다.
“강현아!”
소년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확실했다.

강현은 곡식 주머니를 아이에게 건넸다.
“괜찮아, 같이 담자.”
아이의 눈은 커졌다.

“너, 왜—”
윤호성은 고개를 갸웃이며 중얼거렸다.
“그 아저씨, 진짜 무서웠는데…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었잖아. 너, 진짜 멋있었어.”

사람들 사이에서 어른 한 명이 헛기침하며 자리를 피했다.
마을 분위기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강현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냥, 같이 주운 것뿐이야.”

윤호성은 작게 웃었다.
“응, 그래도 나한텐 충분히 멋있었어.”

해가 기울 무렵, 공터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이들은 가느다란 웃음소리로 뛰놀고 있었고, 강현은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눈은 잠시 멈췄고, 그곳에 박설화가 서 있었다.
설화는 바구니 하나를 끌고 있었고, 멀찍이서 강현의 동작을 묵묵히 지켜봤다.
말은 없었지만, 그 눈동자에는 빛이 머물렀다.

강현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낯익은 바람 소리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발걸음을 돌렸다.

밤.
작은 마루 끝, 강현은 담요를 걸친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빛이 반짝이고, 달빛은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작은 선택 하나, 사람 하나.
그것이 흐름의 시작이겠지.’

그는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바람이 살며시 그의 귀를 스쳤고, 밤의 적막이 가슴에 잔잔히 번졌다.

어둠 속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흐름이란 강물을 닮았다.
강물은 거스를 수 없지만, 누구나 길을 만들지는 않는다.”

무영노인이 그림자처럼 나타나 있었다.
강현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그가 잠시 경청하는 듯 고요히 있었다.

“작은 일 하나라도, 흔들지 말고 흐르게 두어라.
그것들이 모여 강이 되고, 물줄기가 된다.”

말을 마치고, 무영은 사라졌다.
별빛 아래 그의 눈빛엔, 짊어지려는 무게와 걸어가려는 길이 동시에 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