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바람이 희미하게 산등성이를 어루만질 때, 이강현은 눈을 떴다.
어젯밤 내린 이슬이 옷깃을 적셨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숨결은 어제보다 깊어졌고, 몸은 고요하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작은 선택이 흐름이 되고, 그 흐름이 나를 만든다…’
강현은 뒷산 골짜기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가 향한 곳은 평소와는 다른 산의 외진 갈래, 오래전 버려진 사찰터였다.
아이들은 귀신이 나온다며 근처에도 가지 않지만, 강현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사찰터는 허물어져 있었다.
기왓장 사이로 잡초가 무성했고, 한쪽 벽은 무너져 있었다.
하지만 그 안쪽, 바닥 일부가 이상하게 깔끔했다.
강현은 눈을 좁히고 손으로 먼지를 털어냈다.
그곳에 감춰져 있던 것은 작은 석함.
그리고 그 안에는 낡은 고서 한 권이 누워 있었다.
‘…소연기결(素緣氣訣)?’
고서의 표지는 거의 닳아 있었지만, 제목만큼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책장을 펼치자 고운 필체로 쓰인 첫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기(氣)는 억지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그릇을 비움으로 채워진다.”
그 순간, 강현의 몸 안에서 흐르던 미세한 내공의 맥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혼란이 아닌 울림이었다.
마치 몸 안의 길이, 이 책을 통해 더욱 정교히 다듬어지는 느낌.
그는 바위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책장을 넘겼다.
기결은 단순한 무공서가 아니었다.
수련의 방식보다 기운과 마음의 응대법,
즉, 무공과 내면의 균형을 다루는 가르침에 가까웠다.
시간이 흘러 해가 중천에 떴다.
한참을 책에 집중한 강현은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박설화가 바위 아래 조용히 서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줄은 몰랐어.”
강현이 말했다.
설화는 말없이 다가와 고서의 표지를 내려다봤다.
“…소연기결, 무영노인이 말하던 옛 기서 중 하나겠지.”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 기의 확장된 흐름을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느낌이야.”
설화는 그의 옆에 앉았다.
“기의 확장된 흐름이 있다고? 흥미롭네.”
둘은 한동안 말없이 바위 위에서 산 아래를 바라봤다.
안개가 옅게 깔리고, 숲은 바람에 잔잔히 흔들렸다.
해질 무렵, 강현은 마을로 돌아오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전 생의 무공은 빠르되 가벼웠다. 이번엔 다르게. 뿌리부터 다시 쌓는다.’
그날 밤, 그는 작은 등불 아래 고서를 다시 펼쳤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 속 기운이 맑아졌다.
억지로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세상과 어울리는 내공의 길.
흐름을 바꾸는 자가 아닌,
흐름 속에서 더 거대한 흐름을 태워 함께 걷는 자.
그 길 위에, 이강현은 다시 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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